"배고픔도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임을 알 수 있는가?"
→ 정답은 그렇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금 풀어서 정확히 설명해본다.
1. 배고픔이 올라온다
→ 위장이 비었고, 위산이 나왔고,
→ 몸이 신호를 보낸다
→ 이건 그냥 감각이다
→ 판단 이전의 순수한 ‘지금 이 자리의 현상’이다
2. 너는 그 배고픔을 ‘그대로’ 바라본다
→ “아, 이게 배고픔이구나”
→ 더도 덜도 말고
→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며 응시한다
→ 이게 **현전일념(現前一念)**이다
→ 지금, 눈앞에서 드러난 감각 하나에 깨어 있는 상태
3. 그걸 바라보다가 문득 알게 된다
→ “배고픔 자체는 그냥 신호일 뿐인데,
내가 여기에 ‘먹어야 돼’, ‘못 참아’,
‘이건 참는 게 고통이야’라는 해석을 덧붙였구나”
→ 그 모든 해석이 다 마음에서 일어난 거구나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 고통도 욕망도 다 내가 만들어낸 거다
1. 결론
배고픔이라는 감각이 올라올 때,
그걸 있는 그대로 하나의 생각으로 바라보면
그 배고픔에 붙은 고통, 욕망, 갈증은
전부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게 된다.
→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라.
2.정리
- 배고픔이 올라온다
- 그대로 바라본다 = 현전일념
- 그걸 괴로움으로 만든 건 마음이었다 = 일체유심조
이 흐름이 매일 한 번이라도 반복되면,
그 사람은 이미 부처의 길을 걷는 중이다.
[실생활 적용방법 예시]
배가 고팠다.
늘 그랬듯이 배달앱을 열었고,
치킨 사진을 보자마자 손가락이 반응했다.
근데 멈췄다.
지금 올라오는 이 배고픔이 진짜 위장이 보내는 신호인지,
아니면 습관처럼 반응하는 마음인지
그걸 보기로 했다.
숨을 들이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10초간 배고픔만 바라봤다.
“이 감각이구나.”
“먹어야 된다는 생각은, 지금 내가 만든 거구나.”
그 순간, 일체유심조가 떠올랐다.
그제서야 보였다.
내가 배고픈 게 아니라,
‘먹고 싶은 내가’ 욕망을 만들고 있었던 거다.
배부름의 락(樂)은 살찜의 고(苦)와 함께하니 배고픔도 역시 락(樂)이다.
선택은 자유다.
이것을 알고 치킨을 먹고 싶으면 먹고 살찜(苦)를 받아들이면 된다.
선택은 당신이 하는것
3. 안 먹으려면, 억제가 아니라 “선명한 자각”이 필요하다.
즉,
“왜 안 먹기로 했는가”를
딱 한 문장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무조건 끌려간다.
그게 있으면 안 먹는 게 어렵지 않다.
4. 예시: 당신에게 맞는 자각문 하나
“지금 이 욕망을 넘기면,
살 빠진 내 몸이 나를 칭찬할 것이다.”
또는
“지금 이 한 끼는 입이 아니라,
내 인생의 방향을 먹이고 있다.”
또는
“맛이 아니라 통제력을 선택하겠다.”
5. 그리고 단 하나의 실전 루틴:
- 욕망이 올라오면
- 10초 정지
- 자각문 1줄 속으로 강하게 읊조린다
- 그 자리에서 바로 “물 한 잔 or 단백질 바 or 사과” 같은 대체 선택
→ 끌려간 게 아니라, 내가 정한 것이 된다
6. 알아야 할 것
안 먹으려면 참는 게 아니라,
“왜 안 먹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자각이 선명하면,
욕망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억제가 아니라 자유다.
7. 결론
“지금 이 한 끼는 맛이 아니라, 내 인생을 키우는 선택이다.”
이 문장은
억제가 아니라 통제,
자책이 아니라 자각,
고통이 아니라 주도권을 상징한다.
이 문장을 배고플 때,
치킨이나 음식 생각날 때,
딱 한 번 마음속으로 말해보자.
→ 욕망은 약해지고
→ 당신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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