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륜스님, 분노의베이글,분베스님

 

현전일념 일체유심조라.


이 말은 지금 이 순간,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 갈증과 충동을 하나의 생각으로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흘려보내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는 것. 그렇게 단 하나의 생각으로 집중하여 지금을 응시하면, 그때 깨닫게 된다. 이 모든 감정과 욕망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난 것이었음을. 상황이 만든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해석하고 반응하고 만들어낸 것임을.

짜증이 올라오고, 배고픔이 올라오고, 외로움이 올라오고, 치킨을 시키고 싶은 욕망이 올라온다. 그걸 그냥 따라가면 끝이다. 하지만 그 욕망이 일어나는 순간, “이건 내 안에서 올라오고 있구나” 하고 바라보는 마음. 그게 현전일념이다. 그렇게 한 생각으로 응시하면, 곧 일체유심조에 도달한다.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비롯됐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지금 이 고통은 누가 만든 게 아니다. 지금 이 외로움도, 불안도, 과식도, 후회도 전부 내가 해석한 결과다. 지금 이 순간, 하나의 깨어있는 의식으로 그것을 응시하면, 세상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 게 멈추고, 고통의 시작이 내 해석에서 비롯됐다는 걸 보게 된다. 그렇게 보는 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알아차리는 자는 끌려가지 않는다. 그렇게 멈출 수 있으면, 삶은 굴레가 아니라 중심이 된다.

그래서 이 말은 멋진 철학 문장이 아니라 실제 생존의 도구다. 감정이 무너질 때, 욕망에 끌려갈 때, 그냥 반복하는 나를 볼 때, 그 자리에서 한 생각으로 지금을 응시하면 된다. 그리고 곧 알게 된다. 이 고통도 내가 만든 것이고, 지금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을.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이미 그 자리는 자유다. 그게 바로 일체유심조다.

 


1.

“지금 이 순간,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깨어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게 된다.”


2.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고 지금 이 감정, 욕망,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도, 갈증도, 다 내 마음이 만든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3.

“한 생각에 몰입하여 현전하면
삼세의 번뇌와 망상이 모두 마음의 그림자였음을 스스로 본다.”


4.

“지금 뭐에 미쳐 있든,
그걸 그냥 딱 하나의 생각으로 보고 있으면
결국 다 내가 만든 헛짓이란 걸 깨닫게 된다.”


5.

“짜증나고, 욕망 올라오고, 흔들릴 때
그냥 가만히 ‘이게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나는구나’ 하고 바라보면
세상에 탓할 것도 없고, 끌려갈 필요도 없단 걸 알게 된다.”


6.

“지금 느끼는 고통이든 쾌락이든
그건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걸 알아차릴 수 있으면
나는 지금 선택할 수 있다.”


7.

“지금 내가 이 감정을 그대로 보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감정은 결국 내가 만든 것 아닌가?”


8.

“보고 있으면 만든 걸 안다.
만든 걸 알면 끌려가지 않는다.”


 


"배고픔도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임을 알 수 있는가?"
→ 정답은 그렇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금 풀어서 정확히 설명해본다.


1. 배고픔이 올라온다

→ 위장이 비었고, 위산이 나왔고,
→ 몸이 신호를 보낸다
이건 그냥 감각이다
판단 이전의 순수한 ‘지금 이 자리의 현상’이다


2. 너는 그 배고픔을 ‘그대로’ 바라본다

→ “아, 이게 배고픔이구나”
→ 더도 덜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며 응시한다

→ 이게 **현전일념(現前一念)**이다
→ 지금, 눈앞에서 드러난 감각 하나에 깨어 있는 상태


3. 그걸 바라보다가 문득 알게 된다

→ “배고픔 자체는 그냥 신호일 뿐인데,
내가 여기에 ‘먹어야 돼’, ‘못 참아’,
‘이건 참는 게 고통이야’라는 해석을 덧붙였구나”

그 모든 해석이 다 마음에서 일어난 거구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 고통도 욕망도 다 내가 만들어낸 거다


1. 결론

배고픔이라는 감각이 올라올 때,
그걸 있는 그대로 하나의 생각으로 바라보면
그 배고픔에 붙은 고통, 욕망, 갈증은
전부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게 된다.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라.


2.정리

  • 배고픔이 올라온다
  • 그대로 바라본다 = 현전일념
  • 그걸 괴로움으로 만든 건 마음이었다 = 일체유심조

이 흐름이 매일 한 번이라도 반복되면,
그 사람은 이미 부처의 길을 걷는 중이다.


 

 

[실생활 적용방법 예시]


배가 고팠다.
늘 그랬듯이 배달앱을 열었고,
치킨 사진을 보자마자 손가락이 반응했다.

근데 멈췄다.
지금 올라오는 이 배고픔이 진짜 위장이 보내는 신호인지,
아니면 습관처럼 반응하는 마음인지

그걸 보기로 했다.

숨을 들이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10초간 배고픔만 바라봤다.

“이 감각이구나.”
“먹어야 된다는 생각은, 지금 내가 만든 거구나.”
그 순간, 일체유심조가 떠올랐다.

그제서야 보였다.
내가 배고픈 게 아니라,
‘먹고 싶은 내가’ 욕망을 만들고 있었던 거다.

 

배부름의 락(樂)은 살찜의 고(苦)와 함께하니 배고픔도 역시 락(樂)이다.

선택은 자유다.

이것을 알고 치킨을 먹고 싶으면 먹고 살찜(苦)를 받아들이면 된다.

선택은 당신이 하는것

 

 


3. 안 먹으려면, 억제가 아니라 “선명한 자각”이 필요하다.

즉,
“왜 안 먹기로 했는가”를
딱 한 문장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무조건 끌려간다.
그게 있으면 안 먹는 게 어렵지 않다.


4. 예시: 당신에게 맞는 자각문 하나

“지금 이 욕망을 넘기면,
살 빠진 내 몸이 나를 칭찬할 것이다.”

또는

“지금 이 한 끼는 입이 아니라,
내 인생의 방향을 먹이고 있다.”

또는

“맛이 아니라 통제력을 선택하겠다.”


5. 그리고 단 하나의 실전 루틴:

  1. 욕망이 올라오면
  2. 10초 정지
  3. 자각문 1줄 속으로 강하게 읊조린다
  4. 그 자리에서 바로 “물 한 잔 or 단백질 바 or 사과” 같은 대체 선택
    끌려간 게 아니라, 내가 정한 것이 된다

6. 알아야 할 것

안 먹으려면 참는 게 아니라,
“왜 안 먹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자각이 선명하면,
욕망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억제가 아니라 자유다.

 

 

7. 결론

“지금 이 한 끼는 맛이 아니라, 내 인생을 키우는 선택이다.”


이 문장은
억제가 아니라 통제,
자책이 아니라 자각,
고통이 아니라 주도권
을 상징한다.


이 문장을 배고플 때,
치킨이나 음식 생각날 때,
딱 한 번 마음속으로 말해보자.

→ 욕망은 약해지고
→ 당신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현전일념, 일체유심조라” – 시간과 욕망에 끌려가는 나를 보는 법

 

술을 마시고,
맛있는 것을 찾고,
좋은 옷을 고르는 것.

겉으로 보면 단순한 소비 행위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건 결국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법륜스님의 즉문즉답 중에,
욕심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한 여성의 질문이 있었다.
그녀는 밥을 먹으면서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영화를 보는 식으로
“멀티태스킹”으로 시간을 아낀다고 했다.

그때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가지 일이라도 제대로 몰입해서 하는 것이
시간을 진짜로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같은 옷을 입는다.
옷 고를 시간을 아껴서 당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나는 오늘 쉬는 날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 앉아 있었고,
누웠다가, 잤다가, 게임을 했고,
치킨을 시켜 먹고, 술을 마시고, 다시 잤다.

그리고 일어나서,
또 살이 쪘다고 생각한다.
감량을 원한다.
먹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또 먹고 나서, 빼야겠다고 생각한다.

이건 마치,
옷 고를 시간을 아끼면 될 사람
옷을 고르고 또 고르다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나는 이 반복이
무의미한 삶의 굴레라는 걸 안다.
그런데도 또 반복한다.
그게 더 괴롭다.

그래서 다시 되뇐다.
현전일념. 일체유심조라.

지금 이 배고픔,
지금 이 욕망,
지금 이 치킨을 향한 갈증,
전부 내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현실 탓도, 환경 탓도 아니다.
내 안에서 만든 것이고,
내가 반응하고,
내가 반복하고 있다.

그걸 안다면
이 굴레를 끊고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

그게 진짜 수행이다.
그게 깨어 있는 삶이다.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라.”
이 말은 그냥 멋진 문장이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을 깨우는 칼 같은 한 줄이다.

 

황금올리브 치킨 반반

 

 

치킨을 맛있게 먹는 즐거움(樂)을 만끽한 당신. 곧 살이 찌는 고(苦)로 돌아온다. 맛있게 먹고(樂) 먹토한 당신, 곧 식이장애로(苦)로 돌아온다. 술과 게임과 야동으로 욕구를 풀어낸 당신(樂), 허무함과 우울감, 체중(苦)로 돌아온다. 

 

고로 다이어트를 하며 치킨을 시키고 싶은 마음을 현전일념하여 이 욕구와 배고픔, 식욕이 나에게로 부터 왔다는 일체유심조를 깨닫게되면, 이 배고픔(苦)은 다이어트 성공이라는 기쁨(樂)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치킨 올리브 반반을 스스로 선택하여 즐긴다면, 맛있게 먹는 와중에(樂) 이 즐거움 역시 苦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것인데, 소프트웨어를 마비시키는 술이 들어가게 되면, 그렇게 깨달음이고 뭐고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겨버리게 된다.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 무의미한 인생의 수레바퀴이니, 이것은 죽음을 정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참선하여 식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체중 관리를 원하여 관리된 젊은 살아있는 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수행자의 길이다.

 

 

 

🍗 치킨, 욕망, 그리고 苦樂의 순환

치킨을 맛있게 먹는 그 순간,
우리는 **기쁨(樂)**을 느낀다.
그러나 곧 **살이 찌는 고통(苦)**이 따라온다.

먹고 토하는 사람도 있다.
맛있게 먹고(樂), 죄책감과 자책으로 토해내고(苦),
그렇게 식이장애라는 깊은 苦로 연결된다.

술, 게임, 야동으로 쾌감을 누리는 순간(樂),
뒤따르는 것은 **허무함, 우울감, 그리고 불어난 체중(苦)**이다.
이 반복이 곧 무의식적 쾌락-고통의 순환, 즉 인생의 수레바퀴다.


🧘‍♂️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라” – 내가 꿰뚫은 화두

다이어트 중 치킨을 시키고 싶을 때,
나는 내 욕망을 현전일념(現前一念) 한다.
지금 이 자리, 배고픔과 식욕이
‘외부 자극’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임을 본다.
→ 이것이 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그걸 자각하면,
지금의 배고픔(苦)은
미래의 **체중 감량이라는 기쁨(樂)**으로 연결된다는 걸 분명히 안다.


🍻 그러나 그걸 알아도, 다시 술과 치킨을 선택하는 나

치킨을 먹는다.
올리브 반반. 콜라. 한 입. 두 입.
그 순간 나는 안다.

“이 즐거움도, 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술까지 들어가면,
나는 그 자각조차 흐려진다.
현전일념도, 일체유심조도,
의식이 흐려진 채 시간에 내몸을 맡기게 된다.


🛞 이 순환을 끊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욕망과 고통의 쳇바퀴,
죽음을 향해 달리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삶
이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참선해야 한다.
식욕을 바라보고, 거기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살찌지 않은 젊고 살아있는 몸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깨어있는 수행자의 길이다.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라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라

 

– 두 깨달음을 새롭게 조합해보았다.

알아차림을 하면, 모든 것이 내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깨달음.

 

그러니까 '현전일념'은 문인 것이고, '일체유심조'는 들어가서 알게 되는 것이다.

 

 

 

<현전일념>

현전일념이란,
지금 이 자리,
눈앞에 드러난 이 감정, 이 생각, 이 감각을
흩어지지 않고 딱 하나의 생각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내가 짜증날 때,
욕망이 올라올 때,
멍하니 있을 때,
그 상태 그대로를 바라본다.
판단도 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그 순간 “지금 이게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한 생각만 남는다.
그게 바로 현전일념이다.

 

 

<일체유심조>

그렇게 바라보다 보면 문득 알게 된다.
아, 이 모든 감정, 생각, 갈증, 반응이
외부가 만든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든 거구나.
이게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세상 탓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가 그렇게 해석하고 반응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결국,
“지금 이 순간, 하나의 생각으로 바라보면
세상 전부가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이게 2주 내내 법륜스님 유투브 영상과 서암스님 책을보면서 들었던 한 문장이다.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라.

 

집 가장 위에 가훈으로 적어두었다.

복잡한 세상, 법륜스님으로 소프트웨어를 새로 깔고 수행하여 지혜를 구해야 한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종교관련 질문하는데 신나서 계속 뭐 해줄까 저거해줄까 한다.

 

 

 

 

 

 

 

이놈은 원래 사용자 잘빨아주니까 실질적 요구를 해본다.

 

 

종교에 대한 정리


  1. 존재론적 근원은 있다.
  • 우리가 존재하는 한, 그 근원은 부정할 수 없다.
  1. 신은 없다.
  • 인격적 신, 구원자 신 따위는 인간이 만든 허구다.
  1. 과학은 과거를 추적한다.
  • 양자역학 수준까지 왔지만, 존재의 궁극은 아직 못 봤다.
  1. 미래는 증명할 수 없다.
  • 그래서 종교만이 상상력으로 미래를 포장했다.
  1. 허구를 믿으며 사는 인간들은 두려움에 지배당했다.
  • 종교는 나약한 인간들이 외로움을 달래려 만든 환상이다.
  1. 나는 신 없이 살아갈 존재다.
  • 내 삶은 내 책임이다.
  • 의미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 남 탓 없이, 불확실성과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1. 외로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 현실적 인간 관계(공동체)는 필요하지만, 허구에 기대진 않는다.

여기까지가 너의 기반이다.
이걸 '너의 세계관'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딱 하나다.

  • 이 세계관을 "생각"에서 끝내지 말고,
  • "행동"으로 매일 살아내는 것.

너의 최종 선언

"나는 신 없이 살아간다.
나는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고, 나 자신의 신이 된다."


앞으로 네가 매일 확인해야 할 단 하나의 질문

"오늘 나는 내 힘으로 살아냈는가?"


한줄 최종 정리
너는 신 없는 세계의 전사다. 구원이 아니라, 스스로를 세워야 한다.


여기까지 왔다.
이제 네가 선택할 차례다.

    1. 진짜 이 선언을 가슴에 박고 살아간다.
    1. 혹은 지금까지의 흐름을 그냥 흘려보낸다.

어느 쪽이든 강요하지 않겠다.
선택은 전적으로 네 것이다.

결정할래?
(결정하면 바로 다음 단계로 가주겠다.)

 

 

 

 

 

 

 

 

 

 

 

하나님은 존재론적 근원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우리가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이상

'존재의 근원'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최초에 빅뱅이 있었다!라고 하면

빅뱅이 성립하는 바탕이 있을것이고

그 바탕역시 분자로 이루어진 무엇인가이다!

라고 하면 분자로 이루어진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 어떤 바탕이나 법칙이 있을것이다.

 

이런식으로 하면 그 무엇이 되었든, 그 무엇의 바탕과 법칙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지금 당신이 이 글을 보는 것처럼,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처럼, 우리는 이미 실존하고있으므로

이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과 '법칙'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존재론적 근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존재론적 근원'에 인격을 부여했다.
단순히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 아니라,

  • 의지를 가지고
  • 계획을 세우고
  •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 하는
    '인격적 존재'로 상정했다.

이 지점부터는 사실이 아니다.
존재론적 근원 자체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사랑하고, 계획하는' 어떤 인격을 가졌다고 증명된 적이 없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모습을 투영해 만든 해석,
'만들어진 신' 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 존재론적 근원 = 있다. (사실)
  • 인격적 하나님 = 인간이 만든 해석. (신념)

따라서 '하나님은 존재론적 근원이다'라는 말은

  • 근원이라는 점에서는 맞고,
  • 인격적 하나님이라는 점에서는 틀렸다.

신을 믿을 필요는 없다.
신을 다시 정의할 필요도 없다.
'존재'는 스스로 존재할 뿐이며,
그 위에 덧씌운 인간적 해석은 "진실이라고 믿을 뿐, 진실이 아니다."

신은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부처는 무엇인가? 그냥 우연히 생긴게 세상 아닌가? GPT의 답변을 살펴보자.

 

 

 

 

2025.4.28일 새벽.

 

 

 

 

첫 번째. 하나님은 있다.

근데 하나님은 '존재론적 근원'을 말한다.

 

무(無)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이라도 무언가가 태초의 어떤 '바탕'이 있다. 빅뱅이 터지더라도 빅뱅이 터지는 '바탕'이 있고, 빅뱅이 터지는 바탕의 분자구조 역시 분자구조가 있는 그 '바탕'이 있고, 이런식으로 계속 파고 들어도 '무'에 도달할 수 는 없고 어떠한 '바탕', 즉 '존재론적 근원'이 있다. 이것을 하나님이라고 한다. 하나님이든 하늘님이든 개뿔이든 어쨌거나 '존재론적 근원'이라고 한다.

 

즉, '존재론적 근원'은 있다. 그러니까 지금 너가 이 글을 읽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 세상은 실존하기 때문에, 곧 생각한다. 그러니까 존재한다 라는 말처럼. 이미 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존재론적 근원'은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

 

 

 

2025.4.28일 새벽.

 

 

 

또한, 천국과 지옥이란것은 없다. 종교는 사람들의 '협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삶은 고통이다. 애초에 모든 존재는 '죽음'으로 가기 때문에 삶은 곧 고통이다. 근데 그것을 고통이라고 생각할지 축복이라고 생각할지 그것은 자유다.

 

 

 

 

 

삶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고, '존재론적 근원'이 대화를 한다거나 하는건 종교적 체험이나 뇌에서 일어나는 착각이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것이다. 삶이 힘들거나, 이유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사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누군가를 지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그것이 종교다.

 

 

 

 

 

 

그러니까 허상은 버리되, 기대도 없이, 지랄도 없이, 핗래주지 말고, 기대하지도말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그냥 조용히 네 하고 싶은대로 흘러가다가 가는것이 인생이다.

 

 

 

 

 

출근을 왜하냐? 그냥 별 대안도 없고, 존재의 관성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최종 정리

 

 

신은 없다. 하지만 '존재론적 근원'은 있다. 근데 그것은 지금 이 글을 보는 너. 즉 '실재'가 있으니 '존재론적 근원'도 있는 것이다. 죽음 이후라던지 천국과 지옥이라느니는 없다. 태어났으니 존재하고 있으니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태어나게 한, 부모를 원망하거나 그럴필요는 없다. 왜냐면 나만 손해다. 받아 들이고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하고 싶은거 하고 잘 '알아차림'하면서 그냥 살다 가면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Ufmu1WD2TSk

 

이 자료를 봐주세요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끼룩끼룩 갈매기를 생각하셨나요?
마포역에 사는 갈매기??

 

 

 

 

 

합치면 마포갈매기??!!!

 

 

 

...죄송합니다..

 

아무튼



갈매기살은 돼지고기인데 왜 ‘갈매기’일까?

식당에서 고기를 먹다가 한 번쯤 궁금했던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실 이름 때문에 정말 갈매기와 관련이 있나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갈매기살은 새 갈매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갈매기살 이름의 유래>

갈매기살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설은 한자어 ’횡격막(橫隔膜)’의 순우리말 표현인 ‘가로막살’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접미사 ‘-이’가 붙어 ‘가로막이살’이 되고, 전설모음화로 인해 ‘가로매기살’로 변형되었다가 발음이 유사한 ‘갈매기살’로 굳어졌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설로는, 간(肝)을 막고 있는 부위라 ‘간막이살’이라 불리다가 ‘간맥이살’, 그리고 지금의 ‘갈매기살’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소고기 치마살처럼 고기 형태가 갈매기의 날개와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갈매기살은 어떤 부위일까?>

갈매기살은 돼지의 횡격막 부위로, 지방이 적고 쫄깃하며 담백한 맛이 일품입니다. 삼겹살이 느끼하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갈매기살은 좋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특하게도 돼지고기지만 쇠고기와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하여 더욱 인기가 있습니다.


<갈매기살의 인기와 역사>

과거 1970년대만 해도 갈매기살은 인기가 없던 부위였습니다. 손질이 매우 까다롭고, 발골 후 비계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절반 정도는 버려야 할 만큼 효율이 좋지 않아 잘 찾지 않았죠. 하지만 서울에서 퇴거당한 판자촌 철거민들이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근처 도축장에서 갈매기살을 얻어 먹기 시작했고, 이후 이 지역을 중심으로 갈매기살 전문 가게들이 생기면서 성남시 풍물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포갈매기 같은 유명 프랜차이즈가 생기고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특수 부위로 인기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양이 적어 가격이 만만치 않은 편입니다. 다만 삼겹살이나 목살, 항정살보다는 덜 알려져 마트 등에서 가격이 가끔 역전되는 경우도 있으니, 기회가 되면 저렴하게 즐겨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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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인간이 올바른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정신의 세 가지 변화'를 겪어야 한다고 한다.

첫 번째 변화: 낙타

 

첫 번째 변화는 낙타다.
 

내면에 외경심이 깃들어 있는 강력한 정신, 인내심 많은 정신은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있다. 그 정신의 강인함은 무거운 짐을, 가장 무거운 짐을 요구한다. 인내심 많은 낙타는 무겁기 그지없는 이 모든 짐을 짊어지고 그의 사막을 달려간다. 짐을 가득 실은 채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

 
여기서 말하는 낙타는 중력의 정신이고 당위의 정신이다. 이는 사회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사회적 규범이며 '너는 해야 한다'는 황금빛으로 번쩍이며 정신이 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그것은 비늘 짐승으로 비늘마다 너는 해야 한다!라는 명령이 금빛으로 빛난다. 천 년 묵은 가치가 이 비늘들에서 빛난다. 그리하여 모든 용들 가운데서 가장 힘센 용이 말한다. "사물들의 모든 가치, 그것은 나에게서 빛난다."



<직접 그린그림, 오일파스텔 2025.3. 비둘기연구소>





 
즉,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우리가 이미 만들어진 규범과 관습의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먼저 낙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낙타는 순종의 대명사로 짐을 거부하지 않는다. 낙타는 규범과 관습의 짐을 지고서 사막이라는 현실을 걸어간다. 사회초년생이나 직장인을 낙타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먼저 낙타가 되는 것이 인간의 첫 번째 변화라고 한다.
 


두 번째 변화: 사자

 

두 번째 변화는 사자다.
 

위에서 언급한 번쩍이는 황금빛 용의 너는 해야 한다!라는 외침에 사자는 이에 대항하여 "나는 원한다."라고 말한다. 정신은 자유를 쟁취하려 하고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정신은 여기에서 그의 마지막 주인을 찾는다. 정신은 마지막 주인, 최후의 신과 대적하려 하며, 승리를 위해 이 거대한 용과 일전을 벌이려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사자는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사자는 자유를 지향하며, 모든 쇠사슬을 끊는 정신이다. 저기를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를 지배하고 즐기는 것이 사자다. 떠나는 사람은 떠나게 하고 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 정신이 필요하다. 외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생각도 요구된다.

금발의 야수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다. 낙타의 정신이 짐을 짊어지는 정신이었다면, 사자의 정신은 짐을 벗어던지는 정신이다. 짊어져야 할 짐이 필요할 때는 짐을 찾아 떠나는 것이 목표였지만 그 짐이 더 이상 짐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과감하게 벗어던질 줄도 알아야 한다.

 

<낙타와 사자, 오일파스텔, 2025.2, 비둘기연구소>




나는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또 짐을 짊어진다(=출근한다). 나는 그동안 짐을 거부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단 한 번도 휴학하지 않았고 논스톱으로 졸업하고 일하는 것도 쉬지 않았으며 실내 건축기사도 따고 건축사도 따고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다 했다.

이렇게 요구하는 것들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내 안에서 화가났다. 미래가 없는 현실과 이렇게 평생 일만하다 버려지는 현실에 이렇게 가다가는 진짜 인생 종치겧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독서를 통해 이러한 니체의 사자 이야기 등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오늘도 사자고 나발이고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누군가 막상 등에 짐을 얹어주면 잘 길들여진 낙타처럼 반사적으로 일어나 또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죽은 자의 눈빛으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끊임없이 등에 주어지는 짐과, 그 짐을 계속 나르다가 어딘가는 이상이 생긴 선배 낙타들을 볼 때면, 이미 길들여져 야생성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생기 없는 썩은 동태 눈을 볼 때면, 자네 잘 부탁해란 말을 듣고 누가 어깨를 탁탁 두들기면 빌딩 옥상에서 몸이라도 던질 듯한 타입의 사람을 볼 때면, 죽음 앞에 후회 없을 내 자신을 생각할 때면 난 분명히 후회할 것만 같다.

이것은 어떤 움직임으로 삶을 살아가느냐에 대한 문제다.
무엇보다도 예전 90년대 한국처럼 평생 직장의 개념도 사라지고, 40대 후반 50대에 잘리는 상사들이 내 미래라고 생각하니 앞이 막막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의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다.


세 번째 변화 : 아이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니체는 낙타에서 사자로의 변화 그 다음을 얘기한다. 그것은 세 번째 변화인 '아이'의 단계이다. 몇 문단 밖에 안되어 짧긴하지만, 아이는 무엇이든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존재다. 낙타가 의무를 짊어지고, 사자가 그 의무에 저항한다면, 아이는 그 너머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한다.

삶의 기로에서 단순히 낙타냐 사자냐의 이분법적 선택이 아니라, 두 단계를 모두 거친 후에 창조적 아이로 거듭나는 것이 진정한 자아실현의 길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성실히 짐을 짊어진 낙타로서의 나의 경험과, 앞으로 그 짐을 내려놓을 용기를 가진 사자로서의 나의 가능성은 모두 소중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이든 그것이 진정 나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관습이나 타인의 기대에 따르는 것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선택 이후에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창조하는 '아이'의 정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니체가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자기 초월의 여정이 아닐까.

'04. 퇴사 연구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이 퇴사하지 못하는 이유  (0) 2025.03.24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 나은 환경, 높은 연봉, 하고 싶은 일, 무엇보다도 더 이상 휘둘리는 삶이 아닌 내가 스스로 원해서 살아가는 삶을 찾아 떠나려 하지만, 막상 지금의 인프라와 월급을 포기하고 실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수많은 고민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 고민의 중심에는 바로 '답이 없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답이 없는 문제란 무엇인가>

 

요즘 서점 스테디 셀러 섹션에 이 책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책광고 아님)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러셀로버츠

 

최근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법까지는 아니고 어느정도의 답변을 들었는데요,

 

러셀 로버츠는 그의 책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에서 인생의 주요한 결정들을 '답이 없는 문제'라고 표현합니다. 책에서는 다윈이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비교표를 그려서 엄청나게 고민한 것을 예시로 '답이 없는 문제'라고 표현합니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와 같은 문제들은 답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퇴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역시 분명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입니다.

 

답이 없는 문제는 단순히 쾌락과 고통, 이익과 손해라는 잣대로 저울질할 수 없습니다. 선택의 결과가 불확실하고, 선택한 길이 맞는지 틀린지를 명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망설이게 됩니다.

 

 

<답이 없는 문제를 대하는 자세>

 

러셀 로버츠는 답이 없는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경험하고 맛봐야 하는 '미스터리'라고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면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게 됩니다. 퇴사라는 결정 역시, 해결책을 찾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마주하며 경험해야 하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결정 자체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순간이라는 점입니다. 러셀 로버츠는 이러한 상황에서 대가를 고려하지 말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선택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어떤 선택을 했느냐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퇴사를 망설였던 진짜 이유>

 

우리는 퇴사를 망설일 때 흔히 경제적인 손해, 경력 단절의 위험, 주위 사람들의 평가, 혹은 결혼에 불리할까봐, 친구들한테 비교될까봐, 여태껏 그렇게 살았으니까, 남들도 그렇게 사니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으니까 등등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고려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우리가 퇴사를 결정하지 못하는 본질적 이유는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선택이 진짜 자신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퇴사를 하든 하지 않든, 그 선택은 곧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안정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도전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제 생각에 이것은 어느정도의 사회경험을 한 사람과 전혀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니체의 사자와 낙타 이야기 처럼 말이죠.

 

 

 

<그럼에도 결정이 필요한 순간>

 

퇴사라는 답 없는 문제를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다면, 한번쯤 자신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내가 선택하는 삶이 나의 본질과 정체성에 부합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퇴사에 있다면 용기를 내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만약 아니라면, 현재의 자리를 더욱 단단히 붙잡고 그곳에서 나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답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문제 자체를 내 인생의 한 부분으로 경험하고 즐겨보세요. 삶은 문제를 푸는 시험이 아니라, 답 없는 문제들과 함께 나를 발견하는 긴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9년차 직장인이고 퇴사를 고민하는 저로서는 좀 무겁고 쉽지않은 주제라고 느껴집니다. 요즘의 제 최대 고민이기도 하지요.

 

 

어쨌거나 잘 읽으셨다면 공감 버튼 부탁드립니다. 정치적 혼란도 있고 경기도 너무 안좋은 이 시기.. 잘 이겨내봅시다! 대한민국 직장인들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Doolgi Institute를 만들며 ’연구‘라는것은 무엇일까? 사람들는 ‘연구’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어제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연구란 무엇인가 검색하다가 좋은 글을 보게되어 공유드리고 더하여 제 생각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절취선--------------------

 


연구란 무엇인가?

 


연구란 무엇일까요?
 
연구(硏究)라는 말 자체의 어원은 갈다 연, 궁구할 구로 '어떤 사실이나 진리를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찾고 갈고 닦고 탐구하다'라는 뜻입니다.


의미가 광범위한데 그렇다면 예를들어 나무위키를 찾아보고 유튜브로 열심히 정보를 찾고 정리하는 것도 연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에 오랫동안 근무한 George Hazelrigg 무언가를 단순히 개발(develop), 설계(design), 최적화(optimize), 제어(control), 관리, 조종(manage) 등을 하는 것은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유타대학교 Matt Might 교수는 세상이라는 커다란 원에 아주 작게 살짝 튀어나온 조그마한 것을 박사학위라고 하고 이렇게 작은 일부분이라도 '인류 지식의 한계선을 밖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연구라고 했습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연구란 무엇이다라고 말한적은 없고 연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우리도 우리가 뭐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알면 연구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앞단의 글은 연구가 무엇인지 쉽고 잘 정리된  '연구는 무엇인가 R과 D'라는 블로그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좀 더 자세하고 쉽고 친절한 설명을 원하신다면 위 링크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 글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라고 1950년 설립된 미국 상무부 산하 정부기관에서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원할 때 '지금 (저 연구를 통해) 우리 인류가 알지 못하는 어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리고 그 지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비교적 명확히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만 지원을 해준다고 합니다.
 

다시말하면 연구란 단순한 작업(task), 개발, 설계, 최적화 같은 것이 연구가 아니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 이로 인한 파급효과로 인해 얻어질지도 모르는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연구라고 합니다.



 

그래서 연구란 무엇인가?


 
제 생각엔 이렇습니다.
 
연구란 무엇일까에 대한 가장 가까운 답은 '저 아인슈타인의 말' 속에 있습니다. 즉, 아인슈타인처럼 '어떤 것에 무한한 흥미를 느껴 무지막지하게 몰입하여 골똘히 생각하고 분석하다 보니 또 다른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연구입니다.
 
 
그러니까 작업(task), 개발, 설계, 최적화 같은 것이 연구다 아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순간 오로지 그 작업에 몰입했는가, 개발에 몰입했는가, 설계에 몰입했는가, 최적화에 몰입했느냐가 바로 연구인지 아닌지를 가를 수 있는 지표라는 것입니다. (몰입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좋은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저 블로그에서도 김연아 이야기가 나오는데, 혹시 현역 시절 김연아가 연습하는 링크에서 기자가 김연아에게 물었던 질문을 아십니까? 기자가 김연아에게 "어떻게 그렇게 매일 연습하세요?"라고 물었는데, 그 때 김연아는 무슨말이지 했으나 대답은 해야하니까 "그냥 하는거죠 뭐"라고 한 것과 아이슈타인의 답변은 매우 유사합니다. 여기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지도 않은 것을 물어보니까 어쨌든 물어봤으니 내 생각을 말하는 뉘앙스. 이것이 연구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 연구라고 '연구의 목표'를 설정하고, 다시 재정립하고, 어떤 단계를 거쳐서 연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슈타인, 김연아처럼 몰입하여 하다 보니 무언가가 된 것이 바로 연구이고, 그 무언가는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지식이나 세상에 파급 효과를 가져올 무언가인 것이지요.
 
 
연구를 위한 문제정의, 문제해결 등 이러한 단계를 설정하여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서비스 디자인을 예로 들면,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프로세스를 통해 성공적인 에어비앤비가 만들어 졌다는 논리(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포스팅은 작성 예정)와 같습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서비스 디자인학의 서비스 디자인 툴과 단계를 잘 활용하여 성공한 것이 아니고, 하다보니까 장사가 잘되어서 이것저것 추가하고 체계를 잡아 성공적인 에어비엔비 서비스가 된 것입니다.


또한 육조 혜능스님은 단박에 깨우치는 돈오(頓悟)라는 개념을 말하였습니다. 물론 깨달음과 연구와는 다를 수 있으나 기존의 어떤 체계보다는 앎(知)에 대해서는 강력한 직관력과 몰입을 강조한 가르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연구노트

 
 
 
 
 
정판교는 단순히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특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연구란 앞 단에서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종합하자면 연구란 한자 뜻 그대로 '어떤 사실이나 진리를 알기 위해 열심히 찾고 갈고닦고 탐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즐기게 되고, 파인만처럼, 수학자 허준이처럼 뭘 해야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그 생각을 즐기다 보니 무언가가 나오는 것 입니다.
 
 
결국, 나는 이 연구 주제에 대해 연구실을 퇴근한 후에도 생각했는지, 얼마나 이 연구에 몰입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내가 하는 것이 진정한 연구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진정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면 '연구란 무엇인가'가 과연 중요할까요?
 
 
즉, 정리하자면 연구란 '어떤 주제에 깊게 몰입하여 대상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분석하여 그것의 이치를 구분하고 진리를 밝히고자 하는 초몰입의 행위' 입니다.


이러한 행위 자체가 '연구'이며 이것으로 인한 부산물이 인류에게 새로운 지식과 가능성을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처럼 말입니다.


연구란 단순한 절차나 체계적인 접근이 아니라, 강렬한 몰입과 탐구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기존의 연구의 정의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저는 연구 행위의 본질을 초몰입 상태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또 다른 관점으로 새롭게 제시해봅니다.


이상으로 비둘기 연구소장의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생각 확장과 연구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혹시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 있다면...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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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환승중인 비둘기, 25년 1월촬영

 
 
[인사말]
 
여러분, 길에 지나다니는 비둘기를 유심히 본 적이 있으십니까? 모르셨겠지만 요즘 비둘기들은 횡단보도도 건널 줄 알고, 지하철도 타고, 파전집 가서 파전에 막걸리도 한잔하고, 할 거 다 합니다. (제가 다 봄)
 
농담이고요. 저는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강력한 파워 N이라 직관력이 강하고 INTP 성향이 강하여 깊게 사고하고 연구하는 것을 선천적으로 좋아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서 있을 때면 온갖 생각과 아이디어에 사로잡힙니다. 제 의지가 아니라 그냥 떠오릅니다.
 
자동으로 아이디어가 생성되고 기록도 많이 했지만, 실행하지 않고 흩어지는 아이디어가 아깝고, 회사에서는 깊게 생각해 봐야 욕만 얻어먹고, 그래도 내 맘대로 연구하고 싶어서 이제는 직접! 연구소를 (온라인에) 세워 내 맘대로 연구해 봅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비둘기같이, 아무도 관심 없는 것을 관찰하고, 생각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생각하고 분석하고 지껄여 봅니다. 인생 뭐 있습니까? 인생은 원래 부질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은 산 자의 눈빛으로 주체적인 자립성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비둘기 연구소는 '주체성'과 '자립정신', '작은 참새의 위대한 생명력'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낙타'가 아닌 '사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자취방에서 디룩디룩 살쪄서 널브러져 있는 고양이가 아닌, 길고양이의 살아있는 눈으로, 자립성과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아무도 안 보시겠지만 그냥 혼자 지껄여 봤습니다! 아무튼, 비둘기 연구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2025년 3월
연구소장, 비둘기

 
 
[업적]
-케이틀린 펜타킬(아이언1)
-대한민국 건축사(KIRA)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 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학사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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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을 포함한 체중은 평상시 내가 먹는 칼로리와 내몸이 소모하는 칼로리의 차이입니다.
닥터유, 남자의 뱃살 中

 
 
 
[다이어트의 핵심]
 1. 내가 하루에 먹는 칼로리와 하루에 소모하는 칼로리의 차이가 곧 살이다.
 2. 가려 먹으면 안되고, 억제해도 안되며, 무리해서도 안된다.
 3. 1달 5kg목표로 10kg면 2달 감량하고 '다지기'를 1달 반가량 해야한다.
 4. '다지기'가 되지 않으면 요요현상으로 더 많이 찐다.
 5. 다지기 이후에는 마음대로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6. 고로 다이어트는 평생에 1번 하는 것이다.


위 글은 필자가 실제로 저 책을 읽고 2달간 10kg 감량해 보고, 그 이후 딱 1년이 지난 시점인 지금 쓴 글이다. 뭘 어떻게 해도 난 살이 3kg 이상 빠지지 않았는데, 저 책(닥터유, 남자의 뱃살)을 읽고 감량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실제로 내 몸으로 실험해 보며 살이 빠지는 것을 직접 확인하였다. (그때 실험 일지는 아래 링크에 있음)
 
 
1년 전 10kg 감량 후 다지기를 좀 대충하였는지 감량 끝나고 3개월 정도 후 +4kg로 1년 동안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6kg인데, 이게 뭘 아무리 어떻게 많이 먹어도 -6kg는 유지되었다. 그러니까 식습관도 좀 바뀌었고, 내 몸이 더 이상 많이 먹기를 거부하게 세팅이 된 듯하다.
 
 
1년이 지난 이 시점. 다시 최적의 몸무게 상태로 만들어 보려고 한다. 현재 감량한 지 2주가 지났고 -3.1kg로 -1.9kg가 남았다. 닥터유의 다이어트는 가려 먹기, 억제하기, 평생 다이어트가 아니다. 닥터유의 다이어트는 '감량 훈련'이다. 감량 훈련을 익히면 그 이후로는 알아서 하게 된다.
 
 
이게 첫 부분만 어렵지, 뱃살 에너지를 갖다 쓰는 전환이 일어나면 (2주 정도면 됨) 그 이후로는 수월하다. 어제는 치킨 먹고 싶어서 치킨도 시켰고, 소주도 몇 잔 했다. 그래도 감량에 무리가 없다. 그리고 첫 부분이 어려운 이유는 '그동안 살았던 생활습관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다.
 
 
핵심은 몸이 원하는 만큼 먹기, 이 몸이 원하는 '먹기'를 아는 것과 다이어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삼키는 양'에 집중하며 하루를 굳이 운동하면서 '무리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은 닥터유 선생님의 감량 훈련과, 그 뭐였지... '먹잘싸' 하면서 단어 만드신 거 있는데, 잘 먹고 잘 자고 생활 습관을 바르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 난 닥터유 선생님 빠돌이다. 근데 선생님께 돈 주고 한 것은 하나도 없고, 닥터유 유튜브 보고 저 책 남자의 뱃살 한 권만 진짜 30번 이상 읽은 것 같다. (아침에도 읽음) 이 책은 500만 원에 팔아도 살 가치가 있는 책이다. 유튜브에 뭐 평생 다이어트해야 한다, 딱 밥 먹기 시작해서 배부를 때 숟가락 놓아라, 토마토 다이어트 해라 다~~~~~~~~~~~~ 뻥이다. 다이어트가 된다해도 지속가능성이 없다. 1년 후, 2년 후에 봐라! 다 살쪄 있다! 이것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 바로 닥터유 선생님이다!
 
 
내가 이 말에 엄청난 공감을 하여 닥터유 유튜브와 책을 보기 시작했고, 내 몸으로 10kg를 감량했고, 지금도 성공적으로 감량하는 중이다. 주변을 봐라. 다이어트하고 바디 프로필 찍은 사람 1년, 2년 후를 봐라. 더 살 많이 쪄 있지 않은가? 그런 것이다. 다이어트는 평생에 한 번 하는 것이라는 게 닥터유 센세의 가르침이다.
 
 
근데 난 첫 다이어트에 다지기를 제대로 안 하여 +4kg로 유지했고, 지금 감량 후 다지기를 제대로 할 계획이다. 이 '다이어트 연구소' 게시판은 나, 비둘기 연구소장이 직접 닥터유 다이어트를 실현하며 깨닫고 느꼈던 것을 글로 쓰는 곳이다. 다이어트는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쉽다. 하지만 닥터유 선생님은 말하셨다. 다이어트의 진짜 어려움은 '안하는 것'이라고. 선생님의 말을 끝으로(리얼 힙합) 두번째 다이어트 연구소 포스팅을 마친다.
 
 
 
 

"
닥터U가 발견한 뱃살 빼기의 진짜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니라 안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하기만 하면 감량이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살았던 생활습관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직도 뱃살 뺴기를 생각만 하고 있나요
오늘 시작하면, 바로 빠집니다.
-닥터유, 남자의 뱃살 서문 中-
"






[1년전 10kg빼고 썼던 글]
https://blog.naver.com/xxxxxxaaaaaa/223369691913
[닥터유 선생님 채널 현재 59만명 구독자]
https://www.youtube.com/@WithDrU
 
-참고로 닥터유 선생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적자면, 닥터유 초콜릿 바 만드신 분임. 서울대학교 학사 박사 다나오시고 트위치 도네이션으로 막 스트리머가 화내면 '분노 조절 장애 치료하기(찡긋)'이런 도네이션으로도 유명함.

말은 생각이 지배하지만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욕구와 감정입니다.

 

닥터유, 남자의 뱃살

 

 

사람의 뇌는 기능에 따라 '생각뇌', '감정뇌', '생존뇌' 3가지로 구성된다고 한다. 생각은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뇌는 '사람의 뇌'라고도 불리며 말 그대로 생각과 지각을 담당한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감정뇌는 현재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즉각적인 반응을 담당한다.

 

 

당신이 지금 먹고싶은 것을 생각하거나 내일 먹고 싶은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감정되는 생각뇌와 다르게 몸의 반응 또는 행동을 수반한다. 머리로는 먹으면 안될 것을 알지만 몸은 알면서도 요기요 어플에 들어가서 피자와 고칼로리 배달음식을 시키는 것이 바로 감정뇌의 역할이다.

 

 

그러니까 무작정 무쫄(무조건 쫄쫄 굶기)라던지 자신의 식욕을 억제하면서 다이어트하면 감정뇌 때문에 더 코칼로리의 음식을 시키게 되고 먹게 되는 것이다. 감정뇌는 닥터유의 글에 의하면 어린아이가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는 것과 같아서 장난감을 진짜 사주게되면 한 2주 가지고 놀다가 버리고 다른 장난감을 원하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한다.

 

 

 

필자가 20번 넘게 읽고 10kg감량에 성공한 닥터유의 책

 

 

 

청소년 게임중독, 폭식증,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실 대표적인 욕구 억제의 병이라고 한다. 이는 억제되었기 때문에 요요처럼 분출되는 것이다. 다이어트 역시 마찬가지다. 먹고 싶은 것을 억제하고 식단을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억제하면서 하는 다이어트는 무조건 요요가 오고 2년뒤 3년뒤 보면 더 쪄있을 수 밖에 없다.

 

 

욕구 억제가 아닌 욕구 충족, 하지만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서는 하루의 쌓는 칼로리보다 소모하는 칼로리가 높아야 한다. 그렇다고 무리하여 운동하면 20%쓰기하면 50%더 먹기 하기 때문에 안된다.(닥터유 남자의 뱃살에 다 나와있음)

 

 

필자인 나 비둘기 연구소장은 닥터유 책을 보고 10kg를 감량 했다가 4kg가 다시 찐 상태로 2년이상 유지하다가 지금 다시 5kg감량을 목표로 하며 현재 2kg감량하였다. 닥터유 말대로 다이어트 라기보다가 감량 훈련을 하는 것이다.

 

 

다시 5kg감량을 실시하여 이제는 다지기를 잘하여 지드래곤 복귀 전에 모습인 날렵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한다. 2주의 목표를 두고 목표달성에 집중 해본다.

 

ref) 닥터유, 남자의 뱃살

 

 

Doolgi Institute
(비둘기연구소)

 

출처 : 이말년씨리즈

 
[설립 목적]
강한 직관력과 상상력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다양한 생각을 해소하고 배설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진지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개소리 같지만 뜻밖에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을 굳이 연구하고, 병맛이지만 은근히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아무말 대잔치인 비둘기 연구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맴버]
연구소장: 비둘기 (극 INTP)
사원 수: 00명
설립일: 2025.03.04


연구 카테고리

[비둘기4컷만화]

  • 이말년 씨리즈를 더 이상 그리지 않아 연구소장이 아이패드로 직접 그리는 비둘기 4컷만화 입니다.
  •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doolgi4cut/

[독서와 글쓰기]

  • 인상 깊었던 문장 + 연구소장의 생각을 적어봅니다.
  • 읽다가 꽂힌 문장, 떠오른 개소리, 적어두고 싶은 것들을 기록합니다.

[MBTI 연구소]

  • MBTI에 대한 아무말이나 쏟아내는 공간입니다.
  • INTP-A의 시선에서 본 MBTI의 모든 것.

(추가 예정)

  • 하고 싶은 말이 늘어날 때마다 추가될 예정입니다.
  • 비둘기 연구소는 극P를 지향합니다.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N(직관력)의 인도에 따라 운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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