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륜스님, 분노의베이글,분베스님

 

현전일념 일체유심조라.


이 말은 지금 이 순간,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 갈증과 충동을 하나의 생각으로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흘려보내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는 것. 그렇게 단 하나의 생각으로 집중하여 지금을 응시하면, 그때 깨닫게 된다. 이 모든 감정과 욕망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난 것이었음을. 상황이 만든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해석하고 반응하고 만들어낸 것임을.

짜증이 올라오고, 배고픔이 올라오고, 외로움이 올라오고, 치킨을 시키고 싶은 욕망이 올라온다. 그걸 그냥 따라가면 끝이다. 하지만 그 욕망이 일어나는 순간, “이건 내 안에서 올라오고 있구나” 하고 바라보는 마음. 그게 현전일념이다. 그렇게 한 생각으로 응시하면, 곧 일체유심조에 도달한다.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비롯됐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지금 이 고통은 누가 만든 게 아니다. 지금 이 외로움도, 불안도, 과식도, 후회도 전부 내가 해석한 결과다. 지금 이 순간, 하나의 깨어있는 의식으로 그것을 응시하면, 세상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 게 멈추고, 고통의 시작이 내 해석에서 비롯됐다는 걸 보게 된다. 그렇게 보는 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알아차리는 자는 끌려가지 않는다. 그렇게 멈출 수 있으면, 삶은 굴레가 아니라 중심이 된다.

그래서 이 말은 멋진 철학 문장이 아니라 실제 생존의 도구다. 감정이 무너질 때, 욕망에 끌려갈 때, 그냥 반복하는 나를 볼 때, 그 자리에서 한 생각으로 지금을 응시하면 된다. 그리고 곧 알게 된다. 이 고통도 내가 만든 것이고, 지금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을.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이미 그 자리는 자유다. 그게 바로 일체유심조다.

 


1.

“지금 이 순간,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깨어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게 된다.”


2.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고 지금 이 감정, 욕망,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도, 갈증도, 다 내 마음이 만든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3.

“한 생각에 몰입하여 현전하면
삼세의 번뇌와 망상이 모두 마음의 그림자였음을 스스로 본다.”


4.

“지금 뭐에 미쳐 있든,
그걸 그냥 딱 하나의 생각으로 보고 있으면
결국 다 내가 만든 헛짓이란 걸 깨닫게 된다.”


5.

“짜증나고, 욕망 올라오고, 흔들릴 때
그냥 가만히 ‘이게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나는구나’ 하고 바라보면
세상에 탓할 것도 없고, 끌려갈 필요도 없단 걸 알게 된다.”


6.

“지금 느끼는 고통이든 쾌락이든
그건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걸 알아차릴 수 있으면
나는 지금 선택할 수 있다.”


7.

“지금 내가 이 감정을 그대로 보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감정은 결국 내가 만든 것 아닌가?”


8.

“보고 있으면 만든 걸 안다.
만든 걸 알면 끌려가지 않는다.”


 


"배고픔도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임을 알 수 있는가?"
→ 정답은 그렇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금 풀어서 정확히 설명해본다.


1. 배고픔이 올라온다

→ 위장이 비었고, 위산이 나왔고,
→ 몸이 신호를 보낸다
이건 그냥 감각이다
판단 이전의 순수한 ‘지금 이 자리의 현상’이다


2. 너는 그 배고픔을 ‘그대로’ 바라본다

→ “아, 이게 배고픔이구나”
→ 더도 덜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며 응시한다

→ 이게 **현전일념(現前一念)**이다
→ 지금, 눈앞에서 드러난 감각 하나에 깨어 있는 상태


3. 그걸 바라보다가 문득 알게 된다

→ “배고픔 자체는 그냥 신호일 뿐인데,
내가 여기에 ‘먹어야 돼’, ‘못 참아’,
‘이건 참는 게 고통이야’라는 해석을 덧붙였구나”

그 모든 해석이 다 마음에서 일어난 거구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 고통도 욕망도 다 내가 만들어낸 거다


1. 결론

배고픔이라는 감각이 올라올 때,
그걸 있는 그대로 하나의 생각으로 바라보면
그 배고픔에 붙은 고통, 욕망, 갈증은
전부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게 된다.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라.


2.정리

  • 배고픔이 올라온다
  • 그대로 바라본다 = 현전일념
  • 그걸 괴로움으로 만든 건 마음이었다 = 일체유심조

이 흐름이 매일 한 번이라도 반복되면,
그 사람은 이미 부처의 길을 걷는 중이다.


 

 

[실생활 적용방법 예시]


배가 고팠다.
늘 그랬듯이 배달앱을 열었고,
치킨 사진을 보자마자 손가락이 반응했다.

근데 멈췄다.
지금 올라오는 이 배고픔이 진짜 위장이 보내는 신호인지,
아니면 습관처럼 반응하는 마음인지

그걸 보기로 했다.

숨을 들이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10초간 배고픔만 바라봤다.

“이 감각이구나.”
“먹어야 된다는 생각은, 지금 내가 만든 거구나.”
그 순간, 일체유심조가 떠올랐다.

그제서야 보였다.
내가 배고픈 게 아니라,
‘먹고 싶은 내가’ 욕망을 만들고 있었던 거다.

 

배부름의 락(樂)은 살찜의 고(苦)와 함께하니 배고픔도 역시 락(樂)이다.

선택은 자유다.

이것을 알고 치킨을 먹고 싶으면 먹고 살찜(苦)를 받아들이면 된다.

선택은 당신이 하는것

 

 


3. 안 먹으려면, 억제가 아니라 “선명한 자각”이 필요하다.

즉,
“왜 안 먹기로 했는가”를
딱 한 문장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무조건 끌려간다.
그게 있으면 안 먹는 게 어렵지 않다.


4. 예시: 당신에게 맞는 자각문 하나

“지금 이 욕망을 넘기면,
살 빠진 내 몸이 나를 칭찬할 것이다.”

또는

“지금 이 한 끼는 입이 아니라,
내 인생의 방향을 먹이고 있다.”

또는

“맛이 아니라 통제력을 선택하겠다.”


5. 그리고 단 하나의 실전 루틴:

  1. 욕망이 올라오면
  2. 10초 정지
  3. 자각문 1줄 속으로 강하게 읊조린다
  4. 그 자리에서 바로 “물 한 잔 or 단백질 바 or 사과” 같은 대체 선택
    끌려간 게 아니라, 내가 정한 것이 된다

6. 알아야 할 것

안 먹으려면 참는 게 아니라,
“왜 안 먹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자각이 선명하면,
욕망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억제가 아니라 자유다.

 

 

7. 결론

“지금 이 한 끼는 맛이 아니라, 내 인생을 키우는 선택이다.”


이 문장은
억제가 아니라 통제,
자책이 아니라 자각,
고통이 아니라 주도권
을 상징한다.


이 문장을 배고플 때,
치킨이나 음식 생각날 때,
딱 한 번 마음속으로 말해보자.

→ 욕망은 약해지고
→ 당신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현전일념, 일체유심조라” – 시간과 욕망에 끌려가는 나를 보는 법

 

술을 마시고,
맛있는 것을 찾고,
좋은 옷을 고르는 것.

겉으로 보면 단순한 소비 행위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건 결국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법륜스님의 즉문즉답 중에,
욕심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한 여성의 질문이 있었다.
그녀는 밥을 먹으면서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영화를 보는 식으로
“멀티태스킹”으로 시간을 아낀다고 했다.

그때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가지 일이라도 제대로 몰입해서 하는 것이
시간을 진짜로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같은 옷을 입는다.
옷 고를 시간을 아껴서 당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나는 오늘 쉬는 날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 앉아 있었고,
누웠다가, 잤다가, 게임을 했고,
치킨을 시켜 먹고, 술을 마시고, 다시 잤다.

그리고 일어나서,
또 살이 쪘다고 생각한다.
감량을 원한다.
먹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또 먹고 나서, 빼야겠다고 생각한다.

이건 마치,
옷 고를 시간을 아끼면 될 사람
옷을 고르고 또 고르다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나는 이 반복이
무의미한 삶의 굴레라는 걸 안다.
그런데도 또 반복한다.
그게 더 괴롭다.

그래서 다시 되뇐다.
현전일념. 일체유심조라.

지금 이 배고픔,
지금 이 욕망,
지금 이 치킨을 향한 갈증,
전부 내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현실 탓도, 환경 탓도 아니다.
내 안에서 만든 것이고,
내가 반응하고,
내가 반복하고 있다.

그걸 안다면
이 굴레를 끊고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

그게 진짜 수행이다.
그게 깨어 있는 삶이다.


“현전일념하면, 일체유심조라.”
이 말은 그냥 멋진 문장이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을 깨우는 칼 같은 한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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